본관연혁






 長淵盧氏 本貫沿革
장연(長淵)은  여지승람(輿地勝覽)에 의하면 고구려 시대부터 지금의 이름으로  불려 왔던 지명(地名)으로 장연(長淵) 또는 장담(長潭)으로도 불렀으며, 757년 (신라 경덕왕 16)에 폭지군(瀑池郡)에 속하기도 했다.
1018년(고려 현종 9)에는 옹진군(甕津郡)에 속했으며, 1106년(예종 원년)에 비로소 감무를 두었다. 
조선(朝鮮) 태조원년(1392)에 만호(萬戶)를 두어 현관이 감무를 겸하게 하였고 1402년(태종 2)에진(鎭)을 설치하여 병마사(兵馬使)가 판현사(判縣事)를 겸직(兼職) 하게 하였다. 1414(태종 14) 지금의 목감면(牧甘面)서쪽에 있던 영강현(永康縣)을 합하여 연강(淵康)으로 불렀으며 후에 청송현(靑松縣) 과 해안현(海安縣) 을 합치어 다시 장연(長淵)으로 고쳐 불렀다. 1623년(광해군 15)에 도호부(都護府)로 승격하였고  1728년(영조 2) 縣으로 강등 되었다가 다시 도호부(都護府)가 되고 1895년(고종 32) 제도 개정으로 지금의 장연군(長淵郡)이 되었다.



長淵盧氏 本貫沿革
만성통보(萬姓統譜)에 이르기를 당나라 말엽에 盧氏 형제가 중국으로부터 왔다고 쓰여 우리 노(盧)씨 이신수(穗) 字 공(公)께서 아홉 아드님과 함께 동래(東來) 하신 것을 말한다. 
한림학사(翰林學士) 겸 상호군(上護軍)이셨던 공(公)께서는 평안도 정주(定州) 능리촌을 거쳐 용강(龍岡)  쌍제촌(雙梯村)으로 이주(移住) 정착(定着)하셨다. 
신라조정(朝廷)은 公을 불신지례(不臣之禮:자신을 섬기는 신하는 아니지만 예로서 우대함)로 빈(賓)으로 예우(禮遇)를 하셨고 계림(鷄林:경주)에서 돌아가셨다.
공(公)의 아홉 아드님이 외우내환(外憂內患)의 신라왕조를 안정하는데 큰 공을 세우자 중원(中原:중국)의 명문갑족(名門甲族 )임을 숭앙(崇仰)하여, 각각 아홉 읍(邑)을 분봉(分封) 받으시니 공(公)의 아홉 아드님 중 위수(爲首)이신 구(坵)字 공(公)께서  장연봉백(長淵封伯) 되시어 관(貫)으로 삼으니 장연노씨(長淵盧氏) 파조(派祖)이시다.


참고 문헌:
동아 중한사전(한양대학교 교수 손예철 편저) / 고려사 및 여사제강 동국벌열보(1.680년)
노씨수성원류(1.820년) / 장연노씨세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