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모록




효자 노세후(孝子 盧世垕)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0-07-28 18:02:25       조회수 : 438 파일 :

      ()는 중경(重敬) 본관은 장연(長淵) 광헌공(匡獻公) 단()의 19世孫이며, 판돈녕부사() 제대공(齊公) (龜山)의 9世孫 이다.

  1695년(肅宗 21)에 충북 괴산에서 태어나 어려서 부터 타고난 품성(品性)이 어질고 효성이 지극(至極)하여 고을 사람들이 공()을 부를  때에는 이름을 부​르지​ 않고 그저 효동(孝童)이라고 불렀다.

  공()의 나이 아홉살 때 아버지가 원인 모를 병에 걸려 백방으로 좋다는 약을 다 써보았으나 효험(效驗)이 없고 의원(醫員)이 흑리어(鯉魚) 즉 검은 잉어가 있으면 치료할 수 있다고 하자 흑리어를 구하고자 노력하였다. 하지만 구할 수 없어 간절하게 소원하면서 강가에서 울고 있을 때  홀연히 크다란 검은 잉어가 강가로 뛰어 나왔다. 이에 공()은 기쁨을 감추지 못한 채 잉어를 잡아 온갖 정성을 다하여 탕약을 만들어  드리니 씻은 듯이 병이 나았다.

  그 뒤에도 아버지가 병이 들어 꿩고기를 먹고 싶어 하여 사냥꾼에게 구하러 가는 도중에 꿩이 길 가운데 엎드려 놀라서 날아가지도 않으니 그 것을 잡아 으로 쓰니 신기하게도 병이 나았다.​

 

  이를 지켜본 고을 사람들은 공()​의 효성에 하늘도 감동한 것이라 입을 모아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아버지는 이미 나이들고 늙어 또 다시 병이 들자 여러가지 약을 써 보았으나 차도 없이 위독하게 되었을  때에는  단지주혈() 즉 손가락을 베어  피를 아버지 입에 흘러 넣기를 다섯 차례나  하였으나 끝내 돌아 가셨다.

  공()은 정중히  상례(喪禮)를 치르고 무덤 가까이 여막()을 짓어  삼년 동안의 시묘(侍墓) 살이를 죽()으로 연명()하면서 상복을 벗지 않고 아침에 묘소 앞에 엎드려 저녁까지 통곡(痛哭)하고 밤이 되어야  여막()에 돌아왔다.   통곡(痛哭)하는 그 슬픈  곡성(哭聲)은 동리까지 울려퍼져 이 소리를  듣는 동네 사람들까지도 슬픔에 젖게 하였고,  삼년상을 마친 뒤에는 제삿날이 돌아오면 아버지께서 평소에 즐기던 음식을 장만하여 차려놓고 애통해 하였다.

  이에 이 고을 사림(士林)​들이 공()을 하늘이 내린 큰 효자(孝子)라 하여 상을 내리도록 공()의 행적(行蹟)을 작성하여 나라에 올렸다.

     【編纂

     【參考文長淵盧氏世譜, 槐山郡誌, 槐山鄕校, 槐山三綱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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